조선시대 도자기
- 최초 등록일
- 2010.07.05
- 최종 저작일
- 2009.04
- 7페이지/ 한컴오피스
- 가격 1,500원
소개글
조선시대 도자기를 설명하고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 수 있다.
목차
1. 분청사기
2. 조선백자
본문내용
조선의 도자기는 粉靑沙器와 白磁로 대표되는데 분청사기는 임진왜란(1592-1598) 이전
소멸되었고, 백자는 조선시대 全期間에 걸쳐 제작되었다.
1. 분청사기
l 고려청자가 귀족적인 취향과 부드러운 곡선미를 나타냈다면,
u 분청사기는 대담한 표현과 사물의 특징을 간추린 간결한 표현,
거침없이 시원스레 나타낸 조형, 새 왕조 조선에 걸 맞는
새로운 기운이 넘치는 미감을 창출했다.
<분청사기는 왜 만들어 졌을까?>
- 고려말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 등 관요(官窯)에 있던 도공들이 왜구의
침입을 피해 내륙으로 들어가 전국에 퍼짐.
- 전국 각지로 흩어진 도공들은 곳곳에서 다시 청자를 만들기 시작.
- 그런데 옛날 방식대로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푸른빛이 안 나오고 시멘트 빛깔이나 회색,
아니면 누런색이 나옴.
- 가마와 태토, 유약만 있으면 어디서나 청자를 만들 수 있지만 좋은 흙과 유약을 구할 수
없었고 제작여건도 예전처럼 국가가 지원해 주는 일이 없으니 어려웠던 것임.
-도공들의 입장에선 속상할 수밖에 없지만 이제 청자가 갖고 있는
바탕의 의미는 없어짐. 그래서 탄생한 것이 상감할 때 쓰던 백토로
하얗게 분장한 사발임.
<분청사기 용어>
분청사기란 말은 1930년대 고유섭이 당시 일본인들이
사용하던 `미시마[三島]`란 용어에 반대하여 지은 약칭이다.
당시 사람들은 이 같은 그릇을 사기그릇이라 불렀는데 나중에
미술사학자 고유섭(1904-1944) 선생이 `분장한 회청색 사기`란
뜻의 분장회청사기(粉粧灰靑沙器)란 이름을 붙였고, 우리는
다시 이를 줄여 분청사기라고 부르고 있다.
<일본인은 왜 분청사기를 좋아했을까?>
- 15세기 일본의 무로마치(室町)시대에 연극의 노(能),
음악의 렌가(連歌), 차로 대표되는 일본 특유의 미의식의 세계가 확립.
- 무로마치 문화가 지향한 미적 목표는 적막함, 쓸슬함, 스산함의 미학이었음.
- 또 그런 미의식을 추구한 다도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다완(茶碗)이
조선 분청사기.
- `고려다완`이라고 부른 분청다완은 일본인들이 적막의 미에서
`사비(寂)` 의 미학으로 나아가면서 더욱더 좋아하게 돼 아예 조선에서 주문생산으로
수입해 갔을 정도.
참고 자료
없음